내가 읽은책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판사 윤재윤 지음)

아이뜰 2014. 8. 27. 11:49

 

 

 

 

두 친구 이야기(157페이지~160페이지)  내용이 제일 감동 깊었네요.  삶이 바빠 책을 읽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적어 보았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난다. 실제 겪은 일이든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이든 깊이 감동받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아 자기 삶이 한 부분을 이룬다. 나에게는 고등학교때 읽었던 짧은 우화 하나가 이러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제목도 작가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줄거리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어느 마을에 단짝인 두 소년이 살았다. 한 소년은 귀족의 아들이었고 다른 소년은 가난한 평민의 아들이었지만 신분에 관계없이 매일 어울리며 형제처럼 지냈다. 귀족 소년은 당당한 체격의 미소년이었던 데 비해 평민 소년은 작은 키에 조용한 아이였다. 나이가 들어 귀족 소년은 도시 명문 학교로 떠난 뒤 차츰 친구를 잊었으나, 평민 소년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귀족 소년은 당시 귀족의 풍속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택하여 신부가 되었고, 평민 소년도 수도원이 수사가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에 귀족 아들은 대주교가 되어 큰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마침 그 수도원에는 평민 아들인 수사가 부엌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수사는 친구인 대주교를 감히 아는체 할 수 없었고, 대신 일요일마다 설교하는 대주교를 경탄의 눈빛으로 쳐다보곤했다. 그는 대주교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대주교도 설교를 할 때면 성당 구석에서 는 자신을 지켜보는 수사에게 관심이 갔고 그가 옛 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대주교는 옛친구 앞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설교를 지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 대주교의 설교는 날이 갈수록 감동적이어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주교는 이러한 재능을 타고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사는 병에 걸려 수도원의 골방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대주교는 안됐다고 생각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설교 준비에 열중했다. 그러나 수사가 죽은 이후 대주교는 예전과 달리 감화력이 없어졌고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낙담하던 대주교는 어느 날 죽은 수사의 동료부터 그가 숨을 거둘때까지 대주교를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전해 들었다. 그제야 대주교는 칭송받던 자신의 설교가 자기 능력이 나니라 성당 한구석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 주던 친구의 기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친구에게 무관심 하고 병문안 한 번도 안 갈 만큼 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주교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아낀 삶이 자신이 아니라 보잘것없이 보이던 수사였음을 비로서 깨달았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하필 이 이야기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수가가 된 친구의 삶이 보여 준 아름다음과 슬픔 때문 아닐까.

     얼마 전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였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전기를 읽었다. 그녀는 20세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구술을 받아 적는 속기사로 일하다가 25세 연상인 그의 청혼을 받아 결혼했다. 다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으로 파산 직전이었고 간질 발작과 호흡기 질병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안나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14년 동안 온갖 일을 하며 병약한 그를 돌보았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얼마 살 수 없었을 것이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심오한 정신을 가지 대문호였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홀로 설 능력이 없었고 소박한 아내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서야 창조의 열매을 맺을 수 있었다. 정신적 위대함이 결토 평범한 생활인의 지혜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이야기는 사람의 가치와 영향,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더 능력이 있나` 비교하면서 열들감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십 대의 정체성 문제로 그런 비교를 했겠지만 사람에게는 자기 능력과 가치를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는 뿌리 깊은 습성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의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지위나 능력만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위 이야기에 나오는 수사와 안나처럼 사람의 참된 가치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사람은 결코 혼자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결합할 때에야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대주교나 도스토예프스키가 혼자 힘으로 명설교나 명작을 만든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의 능력이나 업적은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나눌 때 각자의 참된 가치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며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길일 것이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두 친구 이야기`가 내 마은속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가까운 사람들과 사이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새삼 돌아 보게 된다.